# 들어가기에 앞서
오늘자로 드디어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플랜 75. 필자는 2024년 1월 29일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진행한 씨네토크에 참석하여 개봉 전 영화를 관람하고 감독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오랜만에 꽤나 맘에 드는 영화를 관람한 거 같아 오늘 포스팅을 통해 플랜 75 영화를 추천합니다. 잔잔하지만 묵직하게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영화의 색감, 조명, 사운드, 프레임에서 주는 분위기가 잔잔하지만 강렬하였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께서는 아래 내용에는 영화의 전반적인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으니 여기까지만 읽어보시고 트레일러 한 번 보시고, 아래 영화 감상문을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 영화정보: 플랜 75
개봉 날짜: 2024년 2월 7일( 대한민국)
러닝타임: 113분
감독: 하야카와 치에
캐스팅: 바이쇼 치에코, 이소무라 하야토, 스테파니 아리안, 타케오 타카, 카와이 유미 등
# 플랜 75 영화 관람 후기
친절함을 가장한 강요된 죽음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잔잔하나 단조로운 피아노 선율과 어울리지 않는 총성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넘어져 있는 휠체어의 헛도는 바퀴, 불안한 청년의 팔에 묻어 있는 피. 어려운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힘든 청년들의 부담인 경제 활동을 마친 노인 인구에 대한 뉴스. 끝내 청년은 스스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마지막 총성과 함께 충격적이고 강렬한 영화의 첫 장면이 마무리된다.
영화가 전달하고자하는 메시지는 첫 장면을 통해 굉장히 함축적으로 전달된다.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국가적 차원에서 고민하기보다는 노인 연령층에 모든 책임을 부과한다. 젊은 연령층의 총구는 노인 연령층을 향하게 되고 근본적 해결책이 아닌 국가의 정책은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며 곧 사회 구성원 모두를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템포가 빨랐던 첫 장면 이후 영화는 굉장히 느리고 잔잔하고 심지어 고요하기까지 하다. 감정 표현에 있어 주인공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주인공들은 영화의 모든 장면에서 감정 표현을 절제한다. 주인공들이 절제하는 감정을 돕는 요소로 프레임의 내에서의 움직임은 최소한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고, 조명은 희미하다. 영화를 보다 보면 굉장히 묵직한 감정이 먹먹하게 다가온다.
플랜 75는 75세 이상의 국민이 무료로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국가는 이에 대한 보상으로 죽기 직전까지 사용할 수 있는 현금 10만 엔과 사후 화장을 비롯한 모든 단계를 지원한다. 흥미로웠던 점은 플랜 75라는 안락사 프로그램을 신청하는 것에 있어 전문의의 판단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또한 이 프로그램의 가입은 노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처럼 포장되어 있으나 사실은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이들을 향한 사회적 압박에 더 가깝다고 느껴졌다.
주인공 미치, 플랜 75에 대한 그녀의 선택은 그녀의 철저한 자유의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가 어렵다. 미치의 상황은 함께 일하던 동료의 죽음으로 한 순간에 일자리를 잃었고, 집이 철거될 예정이어서 이사 갈 집을 마련해야하나 75세 이상이라는 나이와 사회적 제도에 의해 그녀 스스로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중에서 그녀에게 남은 선택은 플랜 75였다.
이 영화에서 등장인물은 노인과 젊은이라는 2개의 연령층으로 나뉜다. 노인 연령층의 인물은 모두 가족이 없고, 스스로 경제활동을 하려 노력하며, 혼자 살아가는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젊은 연령층의 인물은 도덕적, 윤리적 가치관이 인물들이 처한 상황에서 충돌이 일어났을 때 돌발행동을 하는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플랜 75의 모집 담당자 공무원인 히로무는 20년 만에 만난 삼촌의 가입을 돕고 삼촌을 찾아가 따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게 되고 복잡 미묘한 감정을 갖는다. 플랜 75에 75세 이상의 노인들을 가입시키며 히로무는 이 정책의 잔인함을 자신의 문제가 되었을 때 체감한다. 또한 연락되지 않는 제휴 업체를 알아보다가 플랜 75가 약속한 사후 처리에 대한 비인간적인 측면을 마주하게 된다. 결국 히로무는 정책 운영 규칙을 어기고 삼촌의 택한 죽음의 날짜에 삼촌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선택을 한다.
이 과정에서 고인의 소지품을 정리하는 등장인물인 마리아는 히로무의 조력자가 된다. 마리아에게는 심장병을 앓는 딸이 있었고, 딸을 살리기 위해 고인의 사후 소지품을 정리하는 일을 해야만 하였다. 함께 일하는 동료가 고인의 소지품을 훔치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가 건네주는 물건을 거절하던 그녀였지만 영화의 마지막 즈음 고인의 소지품에서 발견한 돈뭉치에는 고민하게 된다.
주인공 미치에게 배정된 상담사 요코는 미치가 선택한 안락사 날짜 이전까지 15분의 정기적인 상담을 진행한다. 전화 상담을 통해 두 사람은 유대감을 형성하게 되고 요코는 프로그램에서 철저하게 금지하는 내담자와의 만남을 갖게 된다. 요코와 미치의 볼링장 신에서 세대 간 화합에 대한 희망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잠깐 보여주긴 하나 이내 마지막 통화 장면에서 모든 희망은 좌절된다. 미치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요코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나 그 시점에 요코의 회사에서는 플랜 75를 가입한 이들이 중도포기 하지 못하게 할 것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도덕적, 윤리적 가치관과 상황의 충돌을 이기지 못한 요코는 미치에게 전화하게 되나 미치는 끝내 그 전화를 받지 못한다.
미치의 역할을 맡은 바이쇼 치에코 배우의 연기는 플랜 75 영화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사회에 대한 의문을 굉장히 묵직하고 절제된 감정으로 전한다. 영화를 본 후 고령 사회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고령 사회에 대한 근본적 원인과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지, 주변 고령자는 외로움을 어떻게 견디고 극복하고 있는지, 인간의 삶의 가치를 사회적 생산성 또는 경제성이 기준이 되어 판단할 수 있는지 등. 국가 차원에서 플랜 75와 같은 정책을 진행한다면 누군가는 노인들의 죽음을 돕는 조력자가 되어야 할 것이고 조력자였던 사람 역시 같은 혹은 비슷한 방법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친절해 보이는 정책 이면의 사실을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한다면, 그 미래는 어떻게 될까?
# 플랜 75 영화 관람 후기를 마무리하며
써 내려간 글이 생각보다 길어 자칫 지루할 수 있었을 텐데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를 보고 다양한 생각이 들었고, 플랜 75 영화에 관해 다양한 생각을 나누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댓글로 소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어지는 포스팅에서는 씨네토크 후기를 전달해 드릴 예정이며 작가의 인터뷰 내용이 구독자분들께도 영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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